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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허……!”
땅이 꺼져라, 탄식을 토해내는 중년인.
머리 위에 익선관(翼蟬冠)을 쓰고, 금빛 곤룡포(衮龍袍)를 걸친 사내는 바로, 천하 만백성의 아비.
당대의 황제였다.
“폐하. 이는 묵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 태감은 폐하를 보필하고, 황실의 안위를 보존하는 국가의 태감이옵나이다. 한데, 그런 태감을 일개 무림의 무지렁이가 공격한 것도 모자라, 황실 기관인 동창을 와해시키지 않았습니까? 명백한 반역 행위입니다. 엄중히 다스리셔야 할 것으로 아뢰옵나이다!” “아뢰옵나이다, 폐하!” “아뢰옵나이다, 폐하!” 황제의 옆에 시립한 대소신료들.
바로, 한 태감이 포섭한 고관들은 일제히 부복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전하……. 저는 지금껏 태감으로서, 충성을 바쳐왔사옵니다…. 이 늙고 비루한 몸뚱어리. 파워볼게임 상한다 한들, 무에 아쉽겠나이까? 하나, 역모를 꾀한, 역적의 태동을 손 놓고 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부디, 엄벌을 내리셔서 황실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국법의 지엄함을 내세우소서.” 한 태감이 쐐기를 박았다.
황제는 어진 자였으나, 영악하지 못해 국정을 운영함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여러 고관이 한목소리를 내자, 유약한 황제의 마음이 동(動)했다.
“허…. 과인 또한, 그대들과 생각이 다르지 않소. 때문에, 한 태감을 불구로 만들고 동창을 와해시킨 강호인과 배후에 관해서는 철저한 수사를 시행할 생각이오. 하나,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는 법. 개봉부윤으로 재직 중인 포증을 특별 수사관으로 임명하여 사건의 전말을 낱낱이 밝혀내리다. 그 정도면 되겠소?” 황제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고관들의 요구는 이유를 불문곡직한 모용세가의 압수 수색 및 진소어의 척살령.

하나 그는 천 년 이상 지속된, 관과 무림(武林)의 불가침이란 관행을 완전히 깨는 일이기에 엔트리파워볼,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신, 황제는 가장 신뢰하는 관료, 포증을 내세워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하지만.
‘포증이라니! 절대로 안 되지. 포청천이 개입하는 순간, 외려, 내가 역모죄를 뒤집어쓰게 될지도 모른다!’ 한 태감은 포증의 이름을 듣는 순간, 속으로 학을 뗐다.
포증.
포청천으로 불리는 그는 청백리의 대명사요, 깊은 지혜와 사안의 실체를 관통하는 선구자로 명성이 드높은 관료였다.
특히 몇 해 전, 백성을 강간, 수탈하고 농민들의 고혈을 빨아먹던 황족의 목을 용작두로 썰어버린 일화는 천하에 모르는 이가 없었으니까.
한 태감은 불편한 노구를 바닥에 철푸덕 처박으며 읍소하기 시작했다.

“폐하! 아니 될 말씀이옵니다. 포증의 기개가 드높다 하나, 강호인들은 일기당천의 무공을 지닌 자들로서, 그에 상응하는 수사대를 구성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옵나이다!” “음…. 그에 상응하는 수사대라. 하늘을 날고 땅을 가른다는 강호인들을 수사할 만한 조직이 황실에 있겠소? 그렇다고 일개, 무가를 조사하는데 군부를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황실에는 최강의 무력집단이 있지 않사옵니까?” “……혹시?” 황제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묻자.
바닥에 머릴 처박은 한 태감이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금의위(錦衣衛)가 있지 않습니까.” “허!”
황제는 탄식했고, 한 태감과 고관들은 회심의 미소를 갈무리했다.
‘낄낄…. 진소어와 금의위가 맞붙게 된다면 양패구상의 형국이 될 터. 눈엣가시 같은 놈들을 단번에 없앨 수 없는 기회다! 위기는 때때로 기회가 된다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 없군!’ 이와 같은 계책은 신의 한 수였다.
애당초 한 태감은 동창의 좌장으로서, 금의위를 숙적으로 여기고 있던 EOS파워볼 터.

불구대천의 원수, 소어와 숙적인 금의위가 싸우게 된다면 그만한 쾌거나 없으리라….
반면.
“금의위라…….” 황제의 고심은 깊어졌다.
금의위가 비록 친위대라지만, 일개 무가의 조사단으로 파견하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했으니.
그러나.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고관들은 다시 한번 입을 모아 앙망(仰望)과 성토를 이어나갔다.
“후……. 과인은 그대들의 뜻을 헤아려 금의위장을 만나보겠소.”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만세, 만세, 만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
유시(酉時) 말경진원탁은 호출을 받고 황제를 알현하였다.
진원탁.

그는 금의위의 수장으로, 전관(全官) 중 가장 빠른 출셋길에 오른 자로 평가되었다.
그러한 세간의 평가는 거짓이 아니었다.
금의위장이란 벼슬이 워낙 권세 가득한 자리기도 했고, 진원탁이 애초에 귀족과 거리가 먼, 평민. 그것도 천애고아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진원탁은 사천, 덕양현 사람으로 청년기에 부모를 여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린 동생까지 실종되는 바람에, 몇 년간 실의에 빠져 살았다.
하나 뛰어난 오성과 근성. 더불어, 총명하기 그지없는 두뇌로 학문과 무공을 수학하여 문(文)과와 무(武)과에 모두 급제한 후, 고속으로 승진하여 불과 서른이란 나이에 금의위장의 오른, 관료계의 입지전적 인물.
때문에, 황제 역시 그런 진원탁을 굳게 신뢰하고 있었다.
“진 금의위장.” “예, 폐하.” “과인이 한 가지 임무를 맡기려 하는데, 괜찮겠소?” “폐하의 명이라면 북망산천이라도 건널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허허! 그대는 정말 충직한 신하요.” “폐하….”
“진 금의위장. 그대는 혹, 무림에 대해 아는 바가 있소?” “관과 무림은 로투스바카라 불가침하는 사이지요. 저는 무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한데 이번 일이 공교롭게도 무림과 관련된 사안이오.” “어떤…?” “그게 말이외다…….” 황제는 한 태감의 보고 내용을 금의위장 진원탁에게 소상히 전달했다.
그러자.
‘진소어라…. 일전에도 강호를 진동시키고 있는 당대 제일의 재목이라 보고 받은 적이 있지. 한데…. 하필이면 왜 그 이름이란 말인가.’ 진원탁은 이미, 예전에도 ‘진소어’란 이름을 한 차례 들은 적이 있다.

소어의 위명이 자자한 탓에 강호, 민, 관의 구분 없이 소문이 돌았던 탓.
‘진소어라…….’ 진원탁은 속으로 그 이름을 나직이 곱씹었다.
“폐하. 최선을 다하여, 조속히 모용세가와 진소어를 조사하도록 오픈홀덤 하겠습니다.” “그리하시오. 단! 일이 황실과 강호 간의 확전으로 불거져선 안 될 것이오. 무슨 말인지 아시겠소?” “명심하겠나이다. 모든 일을 논리와 근거, 국법의 토대 위에서 처리토록 할 터이니, 폐하께선 심려치 마소서.” ***
요령, 모용세가“대총관님.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말도 마십시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듯싶습니다. 진 공자께서 워낙 사업을 크게 벌여두신 터라…. 다행히 육 소저 같은 조력자가 있어 망정이지, 가주님과 원로들께선 세가의 여러 업무에 정신이 없으시고, 제가 행정, 재무를 도맡은 실정입니다.” “그래도 바쁜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근 1, 2년 사이 모용세가처럼 가세가 불어난 무가(武家)는 강호 전체를 뒤져봐도 없을 겁니다.” 대총관은 눈앞에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이 인간이 당최 왜 이럴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었다.
사내는 일전, ‘무이자 대출’이란 과감한 결정으로 모용세가를 도운, 대원전장의 장주였다.
‘음…. 갑자기 왜 찾아와서 아첨하는 거지? 돈 맡기란 소릴 하려는 거겠지? 허허.’ 전장의 장주가 무가에 찾아와서 아부할 일이 그것 말고 뭐가 있겠나.

‘하긴. 은자, 150만 냥이란 거금을 하루아침에 갚은 것도 모자라, 사업을 확장하고 있단 소릴 들었을 테지. 내가 장주라도 우리 세가에 군침을 흘릴 게야.’ 하나 대총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예상이 어긋났음을 깨닫게 되었다.
“대총관님.” “말씀하시죠.” “어제 본 전장으로 청해 만주장에서 전표가 입금되었습니다.” “전표요?”
“네. 무려, 은자 200만 냥에 달하는 거금이지요!” “허! 청해, 만주장이라면 중원 3대 의가로 명성을 떨치는 곳 아닙니까? 운영하는 약방만 해도 여러 수십 곳에 달한다지요? 강호의 대표 의가를 고객으로 유치하게 되었으니 홍복입니다. 부디 이 일이 요령 지방의 경제 부흥으로 이어지길 기원하겠소이다.” “대총관님. 한데, 공교롭게도 이 돈은 청해, 만주장의 이름으로 입금된 것이 아닙니다.” “네? ……그러면?” “바로 모용세가의 진 공자 앞으로 입금된 돈이지요.” 장주의 말에 대총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아니!
또 기연이야?
이쯤 되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200만 냥이란 돈은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는 금액이 아닌바, 대총관은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장주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알아듣게 좀… 말해주십쇼!” 진정하자, 진정하자.
오대세가의 대총관으로서 체면을 지키자.
아무리 다짐해도, 진정이 될 리가 있나.
돈인데.
돈 준다는데.
제일 좋은 거 준다는데!
“대총관님. 그게 말입니다….” 장주가 중언부언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말의 요체는 간단했다.
일전, 소어가 만독곡에서 십향연근산의 해독제로 쓰일 여래초 외에도 수없이 많은 영초와 진귀한 약초를 캐어, 무림맹으로 돌아왔을 때.

소어는 청해, 만주장의 장주인 연인학에게 은혜를 갚는답시고, 모든 영, 약초를 처분하였다.
연인학은 그 영, 약초로 고약, 뜸, 탕약 등을 만든 뒤, 값을 산정하여 오늘날, 모용세가로 보낸 것이었다.
“허… 허허! 할 말이 없습니다, 할 말이 없어. 아무래도 본 세가의 공자께선 전생에 나라를 구하신 모양입니다. 어떻게 닫는 곳마다 기연을 얻는 것도 모자라, 천금을 창출해내시니! 이런 횡재는 생각지도 못했군요.” 대총관의 안면에 대소가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잖아도 모용성씨들은 나날이 몰려드는 중이고, 최근에는 외부제자 입적 문의도 상당한 터였다.
게다가 사업 확장은 물론, 세가 인근의 부지를 추가로 매입하여 건축 규모를 늘렸으니 생각지 못한 은자 200만 냥은 가뭄의 단비였다.
“하하. 대총관님. 예상하건대, 이대로 가시다간 향후 몇 년 후, 무가 중 최고 부자 가문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그리된다면 저 역시 소원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대총관님….” “네?”
“이번 기회에 저희 대원전장과 거래를 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본 전장은 탄탄한 재정 건전성을 바탕으로 고객들의 피 같은 돈을 지키고 매년 업계 최고 수준의 이자를 안겨드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중략).” 역시.
장주가 직접 세가에 당도해서 아첨할 이유는 이것뿐이지.

한데,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
대총관은 대원전장 장주의 긴 혓바닥에 고갤 절레절레 흔들어야 했다.


“캬! 좋다. 나도 확, 도사로 전직해버려?” “아서라! 도사는 아무나 하는 줄 아냐? 너처럼 악독한 놈은 도사 못해.” 희소식을 잔뜩 안고, 본청으로 복귀하는 길.
소어는 전우치의 양탄자를 얻어타고 하늘을 날았다.
예전 같으면, 답답해서라도 쾌경보를 시전했겠지만, 최근 전우치의 비행술은 일취월장하여 곤륜의 운룡팔대식이나, 천마신교의 천마군림보 같은 초절의 경신, 보법과 비교해도 속도 면에서 뒤지지 않았으니까.
한데….
신선놀음 와중에도 소어와 전우치는 옥신각신이다.

“악독이라뇨, 우치 형. 나 정도면 생불 또는 보살로 불려야지.” “양심 무엇?” “양심이 왜요?” “털 난 거 같은데?” “흐흐. 그나저나 이제 곧 마수와 싸워야 할 텐데. 겁나지 않아요?” “겁은 무슨. 몸이 막, 근질근질한다. 마수 놈들 팔다리 뜯어내고 대가리 박살 내는 상상하고 있다고.” “와! 말하는 것 봐. 도사 맞아? 무슨 깡패인 줄…” “인마! 너 닮아서 그렇다, 너 닮아서.” “크크큭.”
“하하하!”


친애하는 독자님들께안녕하세요, 구땡입니다.
이번 회차에서 등장하는 <금의위>는 역사적으로 봤을 때, 명나라 시대의 황제 직속 친위대라 할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투신의 제자가 되었다>의 전반적인 부분은 송나라를 베이스로 두고 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명나라와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 무협이란 장르가 중원을 배경으로 한 공상 소설이다 보니, 독자님들의 직관적 이해와 재미를 위해 시대 고하를 막론한 소재들이 첨가되었습니다.
역사 소설이 아닌 점, 감안하셔서 재미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들은 모두 보고 있습니다. 선플 달아주시는 독자님들 보면서 힘든 연재 시장을 하루하루 버티는 중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완결까지 최선을 다해 연재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길 기원하며 부디 <투신의 제자가 되었다>가 독자님들께 하루, 5분의 즐거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작가, 구땡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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